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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가시리] 이별의 감정, 이미지의 상징성, 표현기법

by hansan671 2025. 4. 12.

고려시대의 대표적 가요인 '가시리'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고전시가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짧고 단순한 언어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이별의 감정과 인간의 내면 심리를 섬세하게 담고 있어 문학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특히 이별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통해 개인적인 슬픔을 공동체적 감정으로 확장시키며, 상징적 표현과 다양한 문학기법을 통해 감정의 깊이를 극대화합니다. 본 글에서는 '가시리'의 핵심 요소를 주제, 상징, 표현기법 세 가지 측면에서 깊이 있게 분석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고전문학을 처음 접하는 학습자부터 문학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들까지 모두가 작품의 진면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곰


1.주제: 이별의 감정과 미련

‘가시리’의 중심 주제는 이별입니다. 하지만 이별을 단순한 ‘떠남’의 개념으로 그리지 않고, 그 이면에 깔린 화자의 갈등과 미련, 체념의 감정선을 매우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시의 도입부인 “가시리 가시리잇고”는 반복을 통해 절박한 감정을 강조하며, 상대의 떠남에 대해 화자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감정을 드러냅니다. 이후 “날 버리고 가시나니”에서는 배신감, 서운함, 아쉬움이 묻어나며,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화자의 내적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하지만 화자는 곧 체념의 태도를 취합니다.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는 단순히 상대방을 배려하는 표현이 아닌, 슬픔을 감추고 체념하려는 자기방어적 태도로도 해석됩니다. 이 대목은 당시의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웠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별이라는 상황을 감내하며 고통을 인내하고자 하는 내면적 결심을 담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는 단순한 슬픔을 넘어선 자기 억제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복합된 정서로, 고려가요 특유의 집단적 정서를 느끼게 합니다.

또한 이 작품이 당시 궁중에서 불렸다는 점에서, 개인의 연애 감정이 아닌 사회적 통념 속에서의 이별 정서가 담겨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귀족 계층이나 궁중 여성들이 개인적 감정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가시리' 같은 작품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로 인해 고전시가는 단순한 감성의 표현을 넘어 시대의 가치관과 정서를 반영하는 문학 양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2.상징: 말, 길, 발, 눈물 등 이미지의 상징성

‘가시리’는 극도로 절제된 언어 속에서도 다양한 상징적 이미지를 활용해 풍부한 의미를 전달합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말’입니다. “말씀”으로 표기되기도 하지만, 이 시에서는 화자의 내면 심리를 외적으로 표현해주는 장치이자 이별의 매개체로 등장합니다. 말은 떠나는 상대의 발걸음을 가속화시키는 존재로, 화자 입장에서는 이별을 앞당기는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길’은 이별이 이루어지는 물리적 공간이자 정신적 단절의 상징입니다. 이별의 길은 단순한 이동 경로를 넘어, 감정의 단절과 관계의 끝을 의미합니다. 이 길은 되돌아올 수 없는 일방통행의 길일 수도 있고, 화자의 마음속에서는 계속해서 떠오르는 미련의 길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이미지로 표현해낸 점에서 '가시리'는 상징의 수준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발’은 실제로 상대가 떠나는 행동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화자의 마음을 짓밟는 고통스러운 행위를 나타냅니다.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는 표현에서 ‘밟는다’는 행위는 단순한 물리적 의미를 넘어서, 감정의 짓밟힘, 즉 화자의 마음이 무참히 상처받는 상황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눈물’은 고전시가에서 자주 사용되는 감정 표현의 도구로, 단순히 슬픔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진정성과 사랑의 깊이를 강조하는 상징입니다. 고려시대의 시가들이 정서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경향을 지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눈물은 모든 감정을 응축한 결정체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시리’는 짧은 시 속에서도 말, 길, 발, 눈물 등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해 화자의 심리 상태와 상황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징들은 작품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이는 현대의 시에서도 사용되는 시적 장치로, 고전시가가 여전히 유효한 감성 언어임을 보여줍니다.


3.표현기법: 반복, 대조, 청유법

‘가시리’는 다양한 시적 표현기법을 통해 짧은 시 안에서도 풍부한 의미와 감정을 전달합니다. 그중에서도 반복법, 대조법, 청유법은 이 작품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표현은 반복법입니다. “가시리 가시리잇고”에서 '가시리'라는 말을 반복함으로써 화자의 절절한 감정과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내면의 동요를 강조합니다. 이 반복은 청자의 감정 이입을 유도하며, 작품 전체의 운율감을 형성합니다. 고전시가에서 반복은 단순한 의미 전달을 넘어, 음악성과 정서적 울림을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음은 대조법입니다. “날 버리고 가시나니”와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는 내용적으로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전자는 상대를 원망하고 아쉬워하는 감정을 나타내는 반면, 후자는 그 감정을 억누르고 체념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대조는 감정의 이중성과 내면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며, 작품을 단순한 이별 노래가 아닌 복합 감정의 문학으로 격상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표현은 청유법입니다. “가시옵소서”라는 표현은 명령보다는 공손한 권유의 말투로, 상대방을 향한 마지막 예의를 지키면서도, 떠나는 이를 존중하는 체념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는 고려시대의 예법과 정서가 반영된 표현으로, 당시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문학적 표현 방식이 결합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시리’는 반복을 통한 감정 고조, 대조를 통한 내적 갈등의 표출, 청유법을 통한 격식과 절제된 슬픔 표현 등을 통해 문학적으로 매우 뛰어난 시적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단순한 이별의 노래를 넘어 시대와 감성을 포괄하는 예술적 텍스트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결론

‘가시리’는 단순한 이별의 노래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고려시대 여성 화자의 복합적 감정과 사회적 배경, 인간관계의 단절 속에서 드러나는 깊은 심리를 표현한 고전시가의 정수입니다. 반복과 대조, 상징과 청유법 등 다양한 시적 장치를 활용하여 감정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시대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적으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이 글을 통해 ‘가시리’를 단순히 시험용 암기 텍스트가 아닌, 감성과 예술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길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 ‘가시리’를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