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동장유가’는 조선 후기 문인 김인겸이 1764년 통신사 수행원으로 일본을 방문한 후 그 여정을 기록한 기행문으로, 조선 지식인의 세계관과 문학적 감각을 생생히 보여주는 귀중한 고전이다.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 외교적 사명감, 문화적 호기심, 문예적 감성을 모두 담은 이 작품은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특히 큰 통찰을 제공한다. 본 글에서는 김인겸의 눈으로 본 일본의 문화, 기행문 형식의 문학적 가치, 그리고 작품이 오늘날 독자에게 주는 의미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1.조선기행문으로서의 문학적 매력
‘일동장유가’는 조선 통신사 수행의 공식적 기록이 아닌, 김인겸 개인의 시선과 감정을 담은 사적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일본 각지의 풍경과 사람들, 그들과의 교류, 그리고 여정을 둘러싼 자신의 감상을 풍부하게 서술하였다. 특히 그의 문장은 수려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당대 유학자의 교양과 문장력을 엿볼 수 있는 문학적 품격을 지닌다. 예를 들어 후쿠오카에서 본 항구의 활기찬 모습이나, 일본 민가의 구조, 사찰의 분위기 등은 단순 묘사를 넘어서 예술적 표현으로 승화되었다.
김인겸은 조선 사대부 특유의 자긍심을 간직하면서도, 타 문화를 편견 없이 관찰하는 자세를 유지한다. 이는 ‘타자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현대 인문학의 시각과도 일맥상통한다. 또한 그의 묘사 방식은 한시와 산문을 교차 사용하는 형식적 실험을 통해 독자에게 감정의 이입과 정보의 전달을 동시에 제공한다. 이러한 방식은 오늘날 우리가 ‘기록과 감성’을 균형 있게 다루는 글쓰기를 배우는 데 훌륭한 참고가 된다. 문학 텍스트로서의 ‘일동장유가’는 기행문이라는 장르의 경계를 넘어, 한 편의 문예적 기록물로 평가받기에 손색이 없다.
2.김인겸이 본 일본의 풍경과 문화
김인겸이 바라본 일본은 단순한 외국이 아니라, 조선과 다른 문화적 구조를 지닌 하나의 독립된 문명세계였다. 그는 대마도를 거쳐 후쿠오카, 오사카, 교토, 에도까지 이어지는 여정에서 각 도시의 풍경과 구조, 거주민의 생활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특히 에도에서의 경험은 가장 상세하고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그는 에도의 도로 체계, 상점가, 일반 시민들의 질서 있는 생활 방식 등을 감탄하며 기록했고, 이는 조선과 일본의 도시문화 차이를 드러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일본의 종교문화 역시 그의 관심을 끌었다. 사찰의 규모와 장엄함, 불교의 대중적 수용 방식 등을 통해 조선에서 볼 수 없는 문화적 특색을 엿본다. 김인겸은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 사회와 비교하여 사색적으로 접근한다. 예를 들어, 조선에서는 금욕적이고 형식적인 유교문화가 지배적이었다면, 일본은 보다 실용적이고 유연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일본의 문자 사용 방식, 교육 수준, 문인들과의 시문 교류 등을 통해 일본의 지식 문화와도 적극적으로 접촉한다. 특히 일본 문인들과의 교유는 단순한 외교적 형식이 아니라, 문화적 공감대 형성의 장이었다. 이 과정에서 김인겸은 동아시아 공통의 문명 기반 속에서 차이를 인식하고, 또 유사성을 발견하는 통합적 시각을 보여준다. 이러한 접근은 그를 단순한 외교 사절이 아닌, 문화적 번역자이자 해석자로 만든다.
3.조선 지식인의 사유와 기행문 형식
‘일동장유가’의 문학적 의의 중 하나는 그 형식미에 있다. 김인겸은 시와 산문을 결합한 시문일체 형식을 통해 여정의 흐름과 정서를 동시에 전달하고자 했다. 여정 중 마주한 특정 장소나 장면에서 그는 한시를 먼저 읊은 후, 그 배경을 설명하고 자신의 감상을 산문으로 이어가는 구조를 취했다. 이와 같은 구성이 반복됨으로써, 독자는 여행자의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내면의 움직임을 함께 체험할 수 있다.
또한 그의 글에는 당대 조선 유학자의 세계관이 뚜렷하게 반영된다. 김인겸은 ‘대의명분’과 ‘국체’를 중시하되, 외부 문명에 대해 열린 자세를 유지하며 관찰하고 분석하는 지적 태도를 견지했다. 이는 조선 후기의 폐쇄적 분위기 속에서도 개방적 사유를 가능케 했던 일부 지식인의 특징이다. 김인겸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단순히 정치적 사안이 아니라, 문화적 교류이자 문명 간 이해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일동장유가’를 통해 보여준다.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기록의 집요함’이다. 단순히 중요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하지 않고, 사소한 거리 풍경, 여관의 구조, 일본인 통역의 말투, 음식의 맛까지도 세세히 기록하는 태도는 그 자체로 훌륭한 민속자료이자 문화사적 가치가 있다. 이는 김인겸이 단순히 사대부의 의무감에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진정한 탐구자이자 관찰자로서 글을 남겼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론
‘일동장유가’는 단순한 외교 보고서나 여행기가 아니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의 역사, 문화, 문학, 세계관을 복합적으로 담아낸 고전 중 고전이다. 김인겸이라는 한 지식인의 눈과 손을 통해 기록된 이 여행기는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될 뿐 아니라, 문학적 아름다움과 형식적 완성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읽고 깊이 사유해볼 가치가 있으며,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문화 간 이해와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