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끝과 시작'은 전쟁 이후의 재건과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를 깊이 있게 다루는 작품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녀의 시에는 단순한 언어 속에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으며, 특히 '끝과 시작'에서는 파괴와 회복, 망각과 기억의 이중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이 시에 담긴 핵심 상징과 의미를 분석하며, 쉼보르스카의 시 세계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1. 전쟁 이후의 재건 – 폐허 속에서 다시 시작하는 삶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은 전쟁이 끝난 후 남겨진 잔해 위에서 다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시의 첫 구절에서부터 그녀는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전쟁이 끝나면 누군가는 치워야 한다."
이 한 문장은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잔해를 치우고 삶을 다시 시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서 '치우는 행위'는 단순한 물리적 노동을 넘어,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기억을 정리하는 인간의 심리적 과정까지 포함한다.
또한, 시 속에서 전쟁 이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존재들"로 표현된다. 역사책에는 전쟁 영웅이나 중요한 정치 지도자들의 이름이 남지만, 실제로 전쟁의 잔해를 정리하고 다시 사회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무명의 일반 시민들이다. 쉼보르스카는 이들을 조명하며, 인간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2. 기억과 망각 – 인간의 아이러니한 본성
*'끝과 시작'*의 또 다른 핵심 주제는 바로 '기억과 망각'이다. 인간은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잊어버린다. 쉼보르스카는 이 아이러니를 시 속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카메라가 사진을 찍고 / 기자들이 기록을 남기지만 / 언젠가 누군가는 빗자루를 들고 와 / 모든 것을 쓸어버릴 것이다."
이는 인간이 역사를 기록하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반복되는 과거 속에서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구절이다. 전쟁의 참혹함을 잊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반복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그 후에야 다시 평화를 되찾으려 한다.
쉼보르스카는 이러한 망각의 속성을 인간의 본성으로 보면서도, 그것이 단순한 무책임함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모든 아픔을 기억할 수 없기에, 망각을 통해 다시 나아갈 힘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3. 자연의 이미지 – 회복과 순환의 상징
이 시에서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자연'의 이미지다. 쉼보르스카는 자연을 통해 회복과 순환을 강조하며,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것들이 결국 자연 속에서 다시 살아남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준다.
"풀이 다시 자라고, 덤불이 우거지고 / 다리 위로 새들이 날아오른다."
이러한 표현은 전쟁이 남긴 폐허조차 시간이 지나면 자연에 의해 다시 덮이고, 새로운 생명이 자라난다는 점을 상징한다. 인간은 전쟁을 통해 서로를 파괴하지만, 자연은 여전히 순환하며 인간에게 다시 살아갈 기회를 준다.
특히 '새'의 이미지는 자유와 회복을 상징한다. 전쟁으로 인해 한때 멈춰버린 삶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며, 인간은 그 속에서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쉼보르스카는 이러한 자연의 순환을 통해,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 다시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론 – '끝'이 있어야 '시작'도 가능하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은 단순한 전쟁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를 깊이 있게 탐구한 작품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잔해를 치우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인간의 숙명, 그리고 기억과 망각이 공존하는 삶의 본질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자연의 회복과 순환을 통해 삶이 계속된다는 점을 시사하며, '끝'이 단순한 종말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의 전제 조건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이 시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되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용기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되새길 수 있다.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은 전쟁이라는 특정한 배경 속에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지만, 그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것인가? 그녀의 시는 여전히 우리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