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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동명왕편] 영웅 서사시, 상징과 기능, 이규보의 시선

by hansan671 2025. 4. 12.

이규보의 『동명왕편』은 고려 시대 문학의 정수이자, 한국 고전 서사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의 출생과 성장, 시련과 건국 과정을 영웅서사 형식으로 풀어낸 한시 형태의 장편 서사시이다. 단순한 전설이나 기록을 넘어선 이 작품은, 이규보의 민족적 정체성과 고려 후기의 시대적 배경이 맞물리며 고구려 계승의식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결정체다. 본문에서는 영웅서사적 구조, 신화 속 상징성과 구조, 그리고 이규보의 작가적 시선을 중심으로 『동명왕편』을 심층 분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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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영웅서사로서의 동명왕편

『동명왕편』은 전형적인 영웅 서사시의 구조를 따르며, 주몽을 신비한 탄생과 위대한 여정을 거쳐 국가를 세우는 영웅으로 그려낸다. 주몽은 하늘의 아들로 알에서 태어나는 초자연적 탄생을 통해 일반 인간과는 다른 존재임을 강조받는다. 이는 영웅 서사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로, 신성한 혈통과 특별한 출생은 영웅이 가진 정당성과 신화를 형성하는 핵심적 장치다.

작품 속 주몽은 활쏘기의 달인으로 묘사되며, 이는 단순한 무예 이상의 상징성을 갖는다. 활은 곧 국가 수호와 정복, 지도자의 자질을 의미하며, 그가 겪는 위협과 도피, 그리고 새로운 나라의 건설까지의 여정은 고난을 이겨내고 공동체를 창조하는 ‘영웅의 여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탈출과 이동, 그리고 마침내 졸본에 도달하여 고구려를 세우는 과정은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니라, 신화적 시간 속에서 반복되어 온 ‘새로운 세계 창조’의 모티프와 맞닿아 있다.

이규보는 주몽의 영웅 서사를 통해 단지 고대의 전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고려가 고구려의 정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독자에게 인식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당시 무신정권 하의 사회 혼란과 외세의 침입 속에서, 이규보는 영웅적 리더십과 국가적 정통성을 문학적으로 제시하고자 했으며, 이는 ‘영웅서사’라는 문학적 틀을 빌려 구현되었다. 『동명왕편』은 그 점에서 고려 후기 민족문학의 자각을 보여주는 상징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2.신화구조 속의 상징과 기능

『동명왕편』은 단순한 역사적 서술을 넘어, 고대 신화의 전형적인 구조와 상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주몽의 출생에서부터 건국까지의 서사는 조셉 캠벨의 ‘영웅의 여정’ 구조와도 일치한다. 즉, 비범한 출생, 일상 세계로부터의 분리, 시련과 도움, 전환점, 귀환과 새로운 세계 창조라는 단계를 따르는 것이다. 이 구조는 독자에게 예언된 운명을 따르는 영웅의 행로를 따라가게 하며, 몰입과 감정이입을 유도한다.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상징은 바로 ‘알에서 태어났다’는 설정이다. 알은 동아시아 신화에서 신성한 탄생의 매개체로 자주 등장하며, 이는 인간 세계와 초월적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주몽은 하늘의 신 해모수가 부여 왕녀 유화에게 낳은 자식으로 설정되며, 이는 신성과 왕권의 정당성을 동시에 부여하는 장치다.

또한 ‘모함을 받아 떠나는 과정’은 단순한 위기 극복이 아닌, 내면적 성장을 위한 통과 의례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요소는 고대 신화가 사회 통합과 정체성 강화를 위한 기능을 했다는 점과도 연결된다. 주몽이 고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과정은, 곧 새로운 공동체의 창출이며 이는 당시 고려인들에게 강력한 상징성을 제공했다.

신화 구조는 결국 당대의 정치적·사회적 의미와도 직결된다. 고려가 고구려의 후예임을 내세우던 상황에서, 『동명왕편』은 단순한 문학작품이 아닌 ‘정치적 신화’로 기능했다. 따라서 작품에 담긴 신화 구조는 독자의 상상력과 정체성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민족 서사의 원형으로 회자된다.


3.이규보의 시선에서 본 동명왕편

『동명왕편』은 단순한 영웅 이야기나 고구려 건국의 전설을 문학적으로 재현한 것이 아니다. 이규보는 고려 후기 문단을 대표하는 문인이자 사상가로서, 당대 정치 상황과 민족의식의 변화 속에서 이 작품을 창작하였다. 그는 무신 정권의 혼란, 몽골의 침입, 불안정한 고려의 정국 속에서 ‘고려는 고구려의 후예’라는 민족 정체성 회복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규보는 주몽을 단지 신화 속 인물로 그리지 않고, 당대 이상적 군주의 표상으로 재해석한다. 주몽의 강인함, 지혜, 지도력은 고려가 추구해야 할 군주의 조건으로 제시된다. 이는 곧 문학을 통해 정치적 이상을 제시하고자 한 이규보의 의도가 반영된 부분이다. 그가 문학을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려 했다는 점에서, 『동명왕편』은 단순한 서사시를 넘어서 정치적 선언문이자 사상적 문서로도 기능했다.

작품의 문체는 고전 한시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이야기의 흐름과 감정의 전개가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는 이규보가 단순한 시인이 아닌, 뛰어난 스토리텔러이자 역사 해석자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또한 그가 사용한 다양한 상징과 문학 장치는, 당시 문인들 사이에서의 고전 해석 방법과도 연결되며, 고려 문학의 수준 높은 문예 전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결국 『동명왕편』은 이규보의 문학관, 역사관, 정치관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는 작품이다. 그의 시선은 단지 과거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제시하는 방향으로 향해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한국 문학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며, 시대를 넘어 계속해서 읽히는 고전이 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결론

『동명왕편』은 단순한 고구려 건국 이야기를 넘어서, 영웅서사, 신화구조, 그리고 고려 지식인의 시선이 결합된 고전문학의 정수다. 이규보는 주몽의 일대기를 통해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과 지도자의 자질을 문학적으로 표현하였다. 그가 그려낸 주몽은 단지 고대 영웅이 아니라, 고려라는 국가의 상징이며 미래를 향한 희망이었다. 오늘날에도 『동명왕편』은 고전 교육, 문학 연구, 민족 서사 이해의 중요한 자료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 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이 작품을 정독해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