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정지용-유리창 1] 유리창이라는 상징, 시적 자아의 심리, 절제된 언어

by hansan671 2025. 4. 15.

정지용의 시 「유리창 1」은 그의 대표적인 서정시이자 한국 현대시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시는 시인이 실제로 겪은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정지용은 자신의 감정과 슬픔을 직접 드러내는 대신, 상징과 은유, 이미지의 층위를 통해 독자에게 서서히 감정을 침투시키는 방식을 택한다. ‘유리창’이라는 시적 장치는 단순한 물리적 사물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 현실과 이상,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상징적 존재로 활용되며, 시인은 이를 통해 생명에 대한 슬픔과 초월에 대한 동경을 절묘하게 그려낸다.

동경




1. 유리창이라는 상징: 투명하지만 넘을 수 없는 경계


‘유리창’은 이 시의 중심 상징이다. 그 투명한 표면은 모든 것을 그대로 비추지만, 동시에 물리적 접촉을 차단함으로써 절대 넘을 수 없는 경계로 기능한다. 시에서 유리창은 병든 아들과 건강한 화자, 생의 안쪽과 바깥쪽, 혹은 삶과 죽음이라는 양극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이다.

시의 첫 구절 “유리창엔 / 밤비가 속살거려”는 유리창이라는 사물의 시각적, 청각적 감각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유리창은 단순한 시각의 창이 아니라, 비의 소리까지 담아내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 안팎은 연결되지 않는다. 이 ‘속살거림’이라는 표현은 부드럽고 감미로운 느낌을 주지만, 동시에 그 소리를 통해 더욱 외로움과 고립감이 강조된다.

정지용은 이 유리창을 통해 인간이 가진 실존적 한계를 상징화한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볼 수는’ 있지만, ‘함께 할 수는’ 없다. 유리창은 화자와 아들의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정서적 단절,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매개한 생의 비극성을 상징한다. 유리창 너머의 아들은 이미 이 세계와 이별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화자는 그 과정을 바라보는 입장일 뿐이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유리창은 바로 그 무력감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 유리창은 또 하나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영혼의 창’이다. 시인은 현실의 고통을 이 창 너머에 있는 어떤 구원의 빛, 초월적 세계로 이끄는 출입구처럼 인식한다. 그러므로 유리창은 단절과 연결, 현실과 이상, 슬픔과 구원이라는 이중적 상징성을 지닌다. 이러한 복합성은 이 시를 단순한 애도의 시를 넘어 존재론적 성찰로 이끈다.



2. 시적 자아의 심리: 슬픔과 무력감, 그리고 초월로의 시선


시의 화자는 사랑하는 존재를 잃어가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 그러나 그 슬픔은 격정적으로 분출되지 않는다. 오히려 시인은 감정을 절제된 언어로 눌러 담는다. 이는 정지용 시의 특징이자, 상징주의적 시 세계의 전형이다. 그는 감정을 외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사물의 이미지에 이입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반영한다.

시의 중반부, “나는 유리창 밖에 나와 / 앉아 있었다”라는 구절은 화자의 정서를 강렬히 드러낸다. 이 문장은 단순히 공간적 위치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의 심리적 상태—외부인, 타자, 배제된 존재—를 드러낸다. 아들과 함께 병실에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는 아들의 고통을 나눌 수 없는 존재로서, ‘밖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이 장면에서 화자는 자신의 무력감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오직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 때, 시인은 초월적 세계로의 시선을 옮긴다. “별이 이슥하도록”이라는 구절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넘어서서, 별을 통한 영원의 이미지, 초월의 가능성을 환기한다. 별은 죽은 자의 영혼이 머무는 공간이며, 동시에 남겨진 자가 희망을 걸 수 있는 상징이다.

이처럼 정지용은 화자의 내면 감정을 자연 이미지와 우주의 상징을 통해 은유화한다. 슬픔은 곧 형이상학적 사유로 전환되며, 시인은 구원에 대한 욕망을 유리창과 별이라는 이미지에 투사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로의 문일 수 있으며, 그것은 유리창 너머, 별이 뜨는 밤하늘 너머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3. 절제된 언어, 정지용 특유의 상징적 미학


정지용의 시는 정제된 언어와 섬세한 이미지로 정평이 나 있다. 「유리창 1」에서도 그는 직접적인 슬픔의 언급 없이, 사물의 묘사와 이미지의 교차를 통해 감정을 환기시킨다. 이와 같은 절제는 오히려 감정의 밀도를 높이며, 독자에게 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예컨대 “어린것이 / 잠을 깬다”는 구절은 극도로 단순하지만, 시 전체의 비극을 응축하고 있다. 이 ‘잠’은 단순한 수면이 아니라, 죽음의 전단계일 수 있다. 아이는 육체적으로 죽어가지만, 시인은 그 과정을 ‘잠’이라는 은유로 표현한다. 이는 죽음을 비가시화함으로써 그 고통을 더욱 심화시킨다.

또한 시는 전체적으로 불균형한 호흡과 문장 구성을 통해 불안과 긴장을 조성한다. 이로 인해 독자는 자연스러운 리듬보다는, 끊기고 멈추는 언어의 흐름을 통해 시인의 내면을 더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언어의 미학적 질감이 정지용 시의 핵심이며, 「유리창 1」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기법은 단순한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실존의 깊은 층위를 건드리는 데 목적이 있다. 감정은 이미지로 전환되고, 이미지는 다시 독자의 체험 속에서 감정으로 환원된다. 이 유기적 구조는 시가 문학 이상의 철학적 울림을 갖도록 만든다.



결론


정지용의 「유리창 1」은 개인적인 비극을 예술로 승화시킨 대표적 텍스트이다. 시인은 유리창이라는 상징을 통해 단순한 사별의 슬픔을 넘어, 존재론적 단절, 인간의 유한성, 초월에 대한 갈망 등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이 시는 형식적 완결성과 주제적 깊이 모두에서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며, 한국 현대시가 도달한 상징주의적 미학의 정점을 상징한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인간이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할 죽음, 그로 인한 슬픔을 단지 애도나 감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라는 예술적 언어를 통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시도의 산물이다. 정지용은 감정을 절제하며, 동시에 상징과 이미지의 밀도를 높여 독자에게 오히려 더 강렬한 감정 체험을 유도한다.

「유리창 1」은 지금도 많은 독자들에게 생과 사를 성찰하게 하는 작품으로 남아 있으며, 정지용이라는 시인이 왜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존재인지를 가장 강렬하게 증명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슬픔을 초월한 언어, 그것이 바로 정지용의 시요, 이 시가 지금도 읽히는 이유다.